[커버스토리] 불법투석기관에서 5개월, 남은 것은…
불법투석기관을 고발한다④ - 떠돌아다니는 만성신부전환자
전국 6만여 만성신부전 환자들이 무료투석으로 신음하고 있다. 투석 질 제고보다는 환자수 늘리기에 급급한 일부 투석기관들이 ‘무료’를 미끼로 환자를 유인해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챙기고 의료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불법투석의원’의 실태를 알리고 개선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멀쩡하던 환자가 갑자기
지난 4월 10일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에 환자 한 명이 실려 왔다. 이 병원에서 3년 가까이 투석을 받다가 최근 전원했던 최순임(가명·51) 환자였다. 최씨를 살펴본 의료진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불과 5개월 사이 최씨의 상태가 너무 악화됐기 때문이다.
2009년 2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약 2년8개월 동안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투석을 받는 동안 최씨의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최씨는 “투석을 받지 않는 날에는 취미로 산에 오를 정도로 건강했다”고 말했고, 의료진 역시 “2년 넘게 투석을 받으면서 이상 증세를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최씨의 몸은 불과 5개월 만에 완전히 망가졌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말이 어눌해졌고, 이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화장실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해졌다.
지난 5개월 동안 최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는 우연히 만난 다른 투석환자에게 ‘불법투석의원’을 소개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최씨에게 “대전에 가면 무료로 투석도 받고 먹고 재워주면서 돈까지 주는 병원이 있다”고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최씨에게는 매우 솔깃한 제안이었다.
최씨는 큰 고민 없이 대전의 A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별다른 연고가 없었지만 매달 병원에서 주는 30만원이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말이 어눌해졌고, 점점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병원에 이상증세를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투석률이 좋으니 걱정 말라”는 대답뿐이었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그제야 “큰 병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환자 관리도 엉망이었다. 최씨는 A요양병원을 다니는 동안 식이요법에 대한 어떠한 조언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 새벽에 환자들끼리 병원 밖에서 아무 음식이나 먹고 들어와도 병원은 아무 제재를 하지 않았다. 식이요법과 병행해 환자들의 칼륨수치를 떨어뜨리는 약도 쓰이지 않았다. 강동경희대병원에서는 항상 복용하던 약이었다.
“아무 음식이나 먹고 칼륨억제제도 안 먹었는데 칼륨수치는 계속 높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강동경희대병원)서는 꼭 먹으라고 챙겨줬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는 한 알도 먹지 않았어요. 항상 좋다고만 대답하니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 했죠.”

원인은 ‘불법투석’
최씨의 치료를 전담하고 있는 이상호 교수는 “말투가 어눌해지거나 걸음이 불편해지는 증상은 요독제거가 제대로 안 된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며 “특히 최씨의 케이스는 투석을 아예 받지 않는 환자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최씨가 병원을 옮기기 전 일반 두통 증세를 호소해 찍었던 MRI사진과 불법투석기관 이용 후 재입원해 찍은 MRI사진을 비교해 설명했다.[사진 참조] 이 교수에 따르면 사진에 보이는 하얀 부분은 대뇌 안쪽에 위치한 대뇌기저핵(basal ganglia)으로, 이곳 아래로는 운동신경이 지난다. 일반적으로 요독이 제거되지 않으면 이 부분에 부종이 발생해 운동신경을 누르고, 이로 인해 최씨와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최씨가 A요양병원에서 제대로 된 투석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다른 뇌 부위와 목에 있는 혈관까지 검사했지만 뇌졸중 등 다른 소견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며 “지난 3년간 멀쩡하던 환자가 불과 5개월 만에 이런 상태가 됐다는 건 투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걸 시사한다. 정상적인 투석으로는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환자의 헤모글로빈 수치에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투석환자의 경우 헤모글로빈 수치는 10~11g/㎗ 정도로, 최씨와 같이 당뇨를 동반한 경우에는 그보다 낮게 맞추는 게 대한신장학회에서 마련한 ‘만성콩팥병 진료지침’에 명시된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최씨의 경우 입원 당시 헤모글로빈 수치가 13.6g/㎗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교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다고 좋은 게 아니다”며 “투석환자의 경우 수치가 12g/㎗를 넘으면 오히려 뇌졸중이나 심혈관질환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의 경우 투석량은 부족한데 조혈제는 많이 투여된 것으로 보인다”며 “조혈제 투여는 검사와 병행해야 하는데, 환자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환자에 대한 맞춤치료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투석량이 적절치 않았다는 점은 혈청 인 수치를 봐도 알 수 있었다. 최씨의 인 수치는 신장학회에서 제시한 적정 수치인 3.5~5.5㎎/㎗을 훨씬 초과한 7.8㎎/㎗이었다.
이 교수는 “인은 투석만으로 제어할 수 없다. 음식에 포함된 인이 있으므로 반드시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3년 간 인이 잘 조절됐던 환자임을 감안하면 식이요법에 대한 병원의 교육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형간염 집단발병
불법투석기관의 부적절한 투석은 환자들의 집단 감염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2005년 대전에 위치한 B투석의원에서는 투석을 받던 환자 12명이 집단으로 C형간염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2003년 초부터 사건이 발생한 2005년까지 이 의원에서 투석을 받아오던 환자들이었다. 본지 확인결과 B의원은 환자 본인부담금을 감면해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불법투석기관이었다.
C형간염에 감염된 환자들 중 송모씨 등 4명은 B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고발장을 통해 ▲손 씻기 및 일회용 고무장갑 착용 등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점 ▲간염 환자와 일반 환자의 투석기를 분리 사용하지 않은 점 ▲혈액검사기관으로부터 HCV양성 반응을 통보받고도 투석기록지나 진료기록부에 기재하지 않은 점 ▲감염사실을 환자들에게 통보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B의원 측의 과실을 주장했다.
반면 B의원 측은 “손 씻기나 투석기 분리사용 등 감염예방을 위한 모든 조치에 철저했고, C형간염 감염사실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했으며, 환자들에게도 감염 사실을 알리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재판부는 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지방법원 민사4부는 “사건 발생 후 대전 서구 보건소가 실시한 특별점검에서 여전히 위생장갑, 마스크 등을 착용하지 않은 채 혈액투석을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진료기록부 기재 여부에 대해 “B의원 측이 최초 환자들에게 전달한 진료기록부와 나중에 법원에 제출한 진료기록부 사이에 차이가 있어 일부 조작된 사실이 보인다”고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종합병원에서는 소독용 장갑을 끼고 하는데 개인병원은 그게 어렵고, 투석주사를 빼는 순간 손을 씻고 와야 하는데 그 병원은 손 닦을 곳이 없었다”는 전직 간호사의 말을 증거로 병원 측 과실에 못을 박았다.
결국 재판부는 B의원 측에 송씨 등 4명에게 각각 손해배상금 600만원에서 1,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잇속 챙기다 목숨 갉아 먹는 환자들
불법투석기관이 들어서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언론을 통해 피해사례가 집중 조명되고 투석전문의협회를 중심으로 한 자정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불법투석기관은 줄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환자들의 행동도 한몫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불법기관과 일반 투석기관을 옮겨 다니는 ‘잇속 빠른’ 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건강이 좋을 때는 불법투석의원에서 돈을 받으면서 지내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 잠깐 제대로 된 투석기관에서 치료받으며 건강을 되찾는 식이다.
실제 불법투석의원에서 투석을 받다가 부갑상선호르몬에 이상이 생겼다는 한 환자는 “질 낮은 투석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서도 “다른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 당장 큰 고비를 넘겼지만 현재 또 다른 불법투석의원에서 투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합법적으로 투석의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많은 환자가 몇 달씩 불법기관에서 투석을 받다가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지면 이곳으로 온다”며 “그러면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들을 살려낸다. 그러나 건강이 좋아지면 그들은 다시 불법투석기관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 원장은 “일부 환자들은 나름의 계산으로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춰 불법기관과 합법기관을 옮겨 다닌다.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길게 본다면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관리 안 되는 만성질환 환자들
전문가들은 불법기관을 떠돌아다니는 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만성신부전은 원인 질환이 대부분 고혈압, 당뇨 등으로 잠재적인 환자가 많고, 뇌졸중이나 심혈관질환, 감염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김대중 교수는 지난해 열린 ‘인공신장실 설치기준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투석기관 간 과당경쟁과 부실운영, 불법행위가 악순환하면서 환자들을 유인하고 있다”며 “투석환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혈액투석의 5년 생존율은 63.7%로, 유방암(87.3%), 자궁경부암(81.1%)보다 낮고 대장암(64.8%)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는 “투석환자 90%이상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이상증세를) 알아채지 못한다”며 “혈액투석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은 별로 없지만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다양한 사망원인의 기초가 된다”고 말했다.
대한신장학회 손승환 투석이사 역시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환자들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이들을 챙겨야 한다. 이들은 한 번 투석을 시작하면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자들”이라고 말했다.
불법투석기관의 부적절한 투석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지만 당국은 피해사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돈 몇 푼을 받고자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기사입력시간 : 2012-04-30 06:19:00
[출처]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2042900015